박산·노동·선암·서봉 등 10여개 자연마을 현존
여말 또는 선초 제작 추정 석탑 선암사지 3층 석탑
양산숙 일가 충효열행 기리기 위해 세운 양씨삼강문
박상과 조카 박순 영정 모신 송호영당, 박용철 생가
입력 : 2022. 03. 21(월)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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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저널] 어룡동은 조선시대 소지면(所旨면)에 속했으며, 1914년 서봉(西峯)리, 인암(仁岩)리, 운수(雲水)리로 조정돼 송정면 관할이 됐다. 박산, 노동, 선암, 서봉 등 십여 개의 자연마을이 남아 있다. 역사문화자원 등 볼 것도 많다.

선암사지 3층 석탑(어등대로 449번길 80-1)
고려 말 또는 조선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인데, 온전한 형태가 아니다. 옥신 위에 옥개석 3개를 중첩해 쌓았는데, 본래 5층 석탑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특이하게도 초층 옥개석 위에 혈공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지석묘나 입석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종의 성혈이다. 득남을 기원했던 민간의 기자신앙 흔적으로 보고 있다. 선암사가 있었는데, 빈대가 극성을 부려 살 수 없자 절을 버리고 순천으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양산숙 충효열행 양씨삼강문
어등산과 황룡강 외에 대표적인 역사문화자원은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충민공 양산숙(梁山璹, 1561~1593) 일가의 충효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양씨삼강문, 전라도사와 나주목사 등을 역임한 박상(朴祥, 1474~1530)과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한 조카 박순(朴淳, 1523~1589) 영정을 모신 송호영당이 있다.

금선사(송정공원로 8-23)
일제강점기인 1922년 금봉산 자락에 지은 신명신사(神明神祠)가 1941년 송정신사(松汀神社)로 승격됐다. 일본 기원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모셨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신전, 배전, 신주사무소, 신찬소 등 4개 동이 있었다. 광복 후 조계종 사찰 금선사로 개조되었고, 배전과 사무소 2개 동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목조신사 건물이라고 한다.

박용철 생가(소촌로 46번길 24)
일제강점기 ‘시문학’을 발간한 시인이자 평론가, 극예술운동가였던 용아 박용철(朴龍喆, 1904~1938) 생가가 있다.
19세기 후반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생가는 행랑채, 사랑채, 안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광주시 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됐다.
도시에서 보기 드물게 초가지붕을 볼 수 있으며, ‘시인의 사계’, ‘용아극장’ 등 문화재 활용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1904년 태어나 1938년 요절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번역가로 아호가 ‘용아’다. 1930년 자비로 창간한 잡지 시문학에 발표한 대표 시 ‘떠나가는 배’는 1984년 가수 김수철이 일부를 차용해 ‘나도야 간다’라는 제목의 가요로 만들었다.

송호영당(소촌로 46번길 46)
호남 사림의 태두 박상(1474~1530)과 조카이자 성리학자로 영의정까지 오른 박순(1523~1589)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1728년 서창 절골마을에 처음 세웠다. ‘송호’라는 이름은 임금이 하사했다고 하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없어졌다가 충주박씨 문간공파 후손들이 1988년 다시 건립했다. 그러나 그 사당도 철로가 놓이면서 현재 자리로 옮겼다. 영정 원본은 원광대 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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