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光山)’ 광주 지칭한 옛 이름 가운데 하나
1935년 광주부로 승격 군명 없어지고 ‘광산군’으로 개칭
조선 시대 성내면 일대 광주면→광주읍→광주부→광주시
비아·하남, 산단·대규모 아파트단지 개발 겨우 명맥 유지
입력 : 2021. 01. 27(수)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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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광주 옛 이름을 이어받은 광산구
‘광산(光山)’은 광주를 지칭했던 옛 이름 가운데 하나다. 조선 시대 지리자료를 보면 광주는 40개 면 또는 41개 면으로 구성됐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제공하는 고지도 해제를 살펴보면, 해동 지도(古代 4709-41)는 현재 광산구 황룡강 서쪽 부분을 제외한 광주 전역과 담양군의 대전면이 광주 목에 해당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비변사인 방안지도 호남지도(奎 12155)에 따르면, 광주 목은 지금의 광산구 남부와 담양군 대전면, 수북면 일부, 신안군 하의면을 포함하고 있다. 1872년 지방지도 광주 지도는 지금의 광산구 남부와 담양군 대전면 중 행성리, 성산리, 갑향리를 제외한 전 지역, 담양군 수북면 두정리, 궁산리, 주평리 3개 리와 신안군 하의면을 포함한 지역이 광주 목이라고 했다.

몇 개의 면은 중간에 이름이 바뀌기도 했지만, 전통적으로 광주는 40~41개 면을 유지해 왔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1895년 전국을 23부(府)의 행정 구역으로 개편하면서 읍(邑)을 군(郡)으로, 읍장관(長官) 관명을 군수(郡守)로 고쳤다. 이에 따라 광주는 나주부(羅州府) 담당 광주군(光州郡)으로 목사는 군수로 불리게 되었다. 이듬해인 1896년에는 다시 23개 부를 13개 도로 개정하고 수부(首府)를 변경했는데, 이때 광주가 나주 대신 전라남도 중심도시가 되었다.

1914년 일제는 광주군 면 통폐합을 단행하며 당시 40개였던 광주 면(面) 수를 광주읍, 지한면, 석곡면, 우치면, 본촌면, 비아면, 하남면, 임곡면, 송정면, 동곡면, 대촌면, 서창면, 효천면, 극락면, 서방면 등 15개 면으로 조정했다.

이어 1931년에는 광주면이 광주읍으로 변경됐고, 1935년 광주군 광주읍이 광주부로 승격되며 광주군 명은 없어지고 ‘광산군’으로 개칭됐다. 광주의 옛 이름을 참작한 것이다. 1937년에는 송정면 일부가 읍으로 승격됐다. 1949년 광주 시내에 있던 군청사가 송정읍으로 옮겨오고 나주군 행정 구역이던 평동, 삼도, 본량이 광산군에 편입됐다.

조선 시대 읍성이 있었던 성내면을 중심으로 한 일부 지역만 광주면→광주읍→광주부→광주시 순서로 명칭이 변경됐고, 나머지 지역은 광산군이 됐다. 광주시는 점차 담당 지역을 확대해 처음에는 서방면, 석곡면, 효지면, 극락면을 편입시켰다. 이어 지산면, 서창면, 대촌면까지 포함하게 되면서 1950년대 후반에는 광주시와 광산군이 비슷한 면적을 차지했다.

1973년 광주는 동구와 서구, 석곡출장소, 지산출장소로 행정 구역이 나뉘었고, 1980년 석곡과 지산출장소가 합쳐져 북구가 신설됐다. 1988년 광산군이 광주시로 편입되며 오늘날 광주광역시의 모습이 갖추어지게 됐다.

광산구는 군 시절 송정읍을 중심으로 비아, 하남, 임곡, 본량, 삼도, 평동, 동곡면을 담당했으며, 현재는 21개 행정동을 두고 있다. 가장 변화가 큰 지역은 옛 비아와 하남면으로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개발되면서, 비아와 하남이라는 지명은 해당 지역의 행정동 이름으로 겨우 살아남았다.

광산구는 조선 시대부터 광주의 관문 역할을 했던 지역으로, 지금도 수만 명이 기차와 비행기를 타고 떠나고 들어오는 교통 거점도시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광산구는 이미 포화상태나 다름없는 다른 구에 비해 비어 있는 공간도 많아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새롭게 산단이 들어오거나 거대한 주거단지로 개발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셈이다. 자연과 도시,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지역의 유·무형 유산을 미래의 자원으로 활용하는 안목과 지혜가 필요하다. /광산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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