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노동조합·수리조합 사뭇 성격 달라
송정노동조합, 1926년 노동자들 권익옹호 위해 결성
송정수리조합, 산미증식 위한 수탈체제 갖추고 설립
입력 : 2021. 09. 30(목)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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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저널] 일제강점기 결성된 송정의 대표적인 조합으로 노동조합과 수리조합이 있었는데, 사뭇 성격이 달랐다.
송정노동조합은 1926년 송정리역 주변 천여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의 권익옹호를 위해 결성됐다. 일제강점기 호남선과 전남선 개통으로 인구가 늘고 화물집산이 빈번하자 송정리역을 중심으로 운수노동자와 운반부, 하차부, 우마차부가 수백 명, 정미 등 그 외 노동자가 또 수백 명이 있었다.

그러나 결속력이 없어 착취당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참 삶’을 살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하고 조합을 창립하기로 했다.

6월 20일 송영좌에서 임시의장 오영의 사회로 임시총회가 개최됐는데, 조합원 150~160명, 방청객 수백 명이 참석했다. 회의 안건은 조합원 결속, 사회단체 연락, 화물주(荷主) 교섭, 회관 설치,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가입, 조선노농총동맹 가맹 등이었다.

그런데 조합을 창립한 직후 이에 대한 보복이었는지 조합원 150여명이 6월 28일부터 일을 잃었다. 도로에서 방황하던 이들이 조합사무소에 모여 대책을 강구했으나, 10일이 지나도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으며 그 이후로 나 두 번이나 창립총회를 금지 당했다.

한편 노동조합보다 1년 먼저 정미노동자를 중심으로 자본가, 상업가, 관리 등이 연합해 만든 송정리친의계(親宜稧)라는 단체가 있었다. 이 단체와 노동조합이 이해관계로 인해 서로 대립했는데, 오영이 타지 사람이라 더 배척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인오는 당초 친의계 쪽 인사 명단에 올라와 있었는데, 이후 노동조합에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박인오가 노동조합을 설립한 공적을 기리는 비가 송정공원(신촌동 산 4) 내에 운수부장 이봉하 기념비와 함께 있다. 조합회관 앞에 있던 것을 옮겨 온 것이다.

송정수리조합(松汀水利組合)은 1930년 11월 14일 설립됐다. 수원지는 영산강의 지류인 황룡강의 서봉보(西峰洑)였으며 몽리면적은 1,300만㎡였다. 울산수리조합과 함께 ‘조선의 2대 수리조합’으로 불렸을 만큼 규모가 컸다는데, 설립을 주도한 인물은 일본인으로 오가키 농장(大垣農場) 운영자이자 식산주식회사 대표 미야와키(宮脇丈八)였다. 미야와키는 1926년 말부터 창립위원장이 되어 조합창설에 적극 나섰다. 그가 송정면에 소유한 358만㎡ 땅이 대부분 열등지로 수원확보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일반 주민들은 수리조합 설립을 반대했는데, 몇 명의 일본인 지주를 위한 수리조합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황룡강 유역의 전통적인 수리시설은 송정면 청등보, 송정면 원두보, 동곡면 입보, 삼도면 작천보, 평동면 두리보 등이 있었다.

보가 있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불편해하지 않고 개축 혹은 신설 등을 요구하지 않았는데, 돌연 일본인 지주 미야와키 외 십 수 명이 몽리지역 내에 수리조합을 설립하고 그 전의 모든 보를 폐지하자고 결의한 후 인가신청을 받고자 창립위원을 선정해 사업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이에 관련해 일본인 60명을 포함한 지주 400여명이 서명날인하고 박하천 이사를 비롯해 진정위원들이 총독부를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일제는 수리조합 설치를 통한 토지개량사업에 역점을 두었다. 산미증식을 위한 수탈체제를 갖추려 한 것이다. 때문에 수리조합반대운동이 1921년 익산에서 처음 시작해 1934년까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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