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향 광산구, 국난시 의병활동 결의하고 행동 나서
눌재 박상, 송천 양응정, 사암 박순, 고봉 기대승 등
선거이 장군, 원도산마을 순조 명으로 ‘정려’ 세워져
이경채 독립 운동가, 건국훈장 애국장 모교에 공적비
입력 : 2021. 09. 30(목)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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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저널] 눌재 박상(朴祥, 1474~1530), 송천 양응정(梁應鼎, 1519~1581), 사암 박순(朴淳, 1523~1589), 고봉 기대승(奇大升, 1527~1572), 용아 박용철(朴龍喆, 1904~1938), 임방울(林芳蔚, 1904~1961), 윤상원(尹祥源, 1950~1980) 등은 광산구가 배출한 대표적 인물이다.
광산구는 의향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의병활동을 결의하고 행동에 나섰던 선조들이 나고 자란 지역이다. 수많은 문장가와 예술가를 배출했다.

이와 함께 송정을 대표하는 인물로 선거이(宣居怡, 1550~1598) 장군, 이경채(李景采, 1910~1978) 독립 운동가를 빼놓을 수 없다.
선거이 장군은 조선 중기 무신으로 자는 사신(思愼), 호는 친친재(親親齋)다. 장흥에서 태어나 광산으로 이사해 1570년 식년무과에 급제했다.

1587년 이순신 장군과 함께 여진족을 막아 공을 세웠고, 성주목사를 거쳐 1591년 전라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593년 함안일대에서 노략질하던 왜군에 맞서다 탄환을 맞았다. 1594년 체찰사 윤두수 명령으로 김덕령 등과 거제도 왜적을 수륙으로 협공하는 작전을 펼쳤으나 실패했다.

장군을 기리는 정려(도산동 698-2)는 그로부터 200년 뒤인 1801년 순조의 명으로 세워졌으며, 본래 고내상 마을에 있었으나 원도산마을로 이건했다.
2016년 제60보병사단 16연대는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육지와 바다를 오가며 공을 세운 장군을 기리기 위해 부대 이름을 ‘선거이 연대’로 명명했다.

이경채 독립운동가는 송정(송정리 659) 출신이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공부하다 1920년 송정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월반으로 조기에 졸업한 뒤 1924년 광주고보에 진학했으나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에 대한 차별로 인한 동맹휴학을 경험한다.

이 경험은 그의 저항정신을 싹틔웠다. 1927년 박병하, 윤해병 등과 함께 비밀리에 ‘독서회’를 조직했는데,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토론하는 비밀모임이었다.
1928년 독서회 모임 멤버인 박병하와 “천황은 신성으로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제국주의자의 말”이라며 천황제를 비판하는 인쇄물을 제작해 송정리역, 송정신사 등에 부착했다.

이 일은 지역 학생들을 결속시키는 계기가 돼 이듬해인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이경채는 징역 1년 6월에 처해져 개성 소년형무소에 투옥됐다가 학생운동 직전인 10월 20일 출옥했다.

출옥 후 요시찰 인물로 지속적인 감시를 받아야 했던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야간) 법률과에 입학했으나 이봉창 의거 이후 도쿄 경시청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다.

항주로 건너간 그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조직한 한국독립당 기관지 진광(震光) 간행에 간여하다 장개석 군사고문으로 활약한 장백리 주선으로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에 입교했다.
이경채는 김판수, 이중환, 이일휘 등의 이름을 사용했으며, 1980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수여됐다. 2017년 모교인 송정동초등학교에 공적비가 건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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