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 호남의병 용진산 영웅 전해산 의병대장
항일운동 선봉 면암 최익현 영향 의병항쟁 투신
광산서 오성술·조경환 의병장과 ‘대동창의단’ 조직
1910년 32세로 대구 감옥서 사형 집행 우국충절 순국
입력 : 2023. 02. 08(수) 10:51
가가
[광산저널] “아! 천하의 대의는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만 빠져도 사람이 사람 되지 못하고
나라가 나라 되지 못한다.
왜 대의는 세 가지가 있다하는가
우리 선왕의 땅은 한 치라도 남에게 주어서는 안 되고,
우리 선왕의 백성은 한명이라고 오랑캐가 되어서는 안 되고
우리 선왕이 숭상한 도학은 하루라도 없어져서는 안 된다.

전해산은 한말 호남의병의 걸출한 의병대장으로 일 군경이 지목한 조선 의병 8대 괴수(최익현, 고광순, 기삼연, 김태원, 김율, 전해산 안규홍 심남일)로 지목한 거물 의병장이었다.
그는 1879년 전라북도 임실군 둔남면 국평리에서 태어났다.
1906년 항일운동의 선두에 선 면암 최익현의 거의를 보고 의병항쟁에 투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1907년 8월 전북 진안 이석용이 ‘창의동맹단’을 창의하자 참모로 활동하면서 진안, 임실을 중심으로 전주, 장수, 무주, 순창, 구례, 곡성 등 9개 군에서 맹렬히 활동하면서 호남 동부지역을 휩쓸었다.
1908년 3월 전해산은 전남의 기삼연이 총살되고 김태원 대장이 고군분투하고 있어 광주로 내려왔다.

∎전해산 대동창의단을 조직하다

전해산은 김태원 의병장이 어등산 전투에서 전사하고 광산에서 흩어진 의병들을 모아 재기하려는 오성술 의병장과 조경환 의병장을 만나 ‘대동창의단’을 조직하였다. 대동 의병대장에 전해산(기홍), 선봉장에 정원집, 중군장에 김원범, 후군장에 윤동수, 호군장에 박영근, 도포장 이범진, 척후장 임장택, 도총장 김성채, 참모장 이봉래, 참모 이영준, 김돈, 김공삼, 김원국, 이성화다.
대동창의단은 동맹서사(同盟誓辭)를 발표해 구국 항쟁에 나섰다.

대동창의단은 제1진에서 제10진에 이르는 의병장은 심남일, 박도경, 김영엽, 조경환(대천), 신화산, 이순식, 이기손, 오성술, 권택, 안덕봉이다. 전해산은 호남의병의 정신적 지주였음을 알 수 있다.
‘대동’이란 명칭은 중앙정부가 인정하는 대규모의 의병진을 의미한 것이다.

전해산은 용진산 주변 대명동천과 석문동천, 용진동천에 주둔하면서 왜적을 유인하여 전투를 했던 것이다. 대명동천 영사재(장탄)는 탄약제조와 무기 개조 장소로 활용하였다. 용진동천은 전해산, 조경환, 오성술 의병장 등이 일본 군경과 자주 전투를 벌인 곳이다.
1909년 3월 27일 용진산 아래 임곡면 사오치에서 적과 교전 끝에 의병 30명이 체포되었고. 전해산 의병장은 피신하여 남은 부하들을 모아놓고 다시 재기할 것을 약속하고 일단 군대를 해산시켰다.

의병해산 후 전북 진안 본집으로 갔다가 남원 고래산에 있는 북성동으로 들어가 서당을 차리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10월 30일 조두환의 밀고로 일군에 체포되어 영산포 헌병대로 끌려갔다. 광주에서 재판을 받은 후 대구감옥으로 이송되었다. 1910년 대구 감옥에서 사형 당했다.
그는 32세의 나이로 오직 나라를 지키려는 우국충절로 순국하였다.

처형된 영구가 본가에 도착하자 부인 김씨는 통곡한 후 자결하였다.
쌍 상여를 운구하여 장수군 번암면 앞산 남쪽 기슭에 쌍분으로 장사를 지냈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 장을 추서하였다.
광산저널 webmaster@gsjn.co.kr
주요기사더보기

실시간뉴스

많이 본 뉴스

기사 목록

광산저널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