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예운동가 용아 박용철 ⓛ
입력 : 2023. 06. 13(화)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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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저널] ∎영랑 김윤식과의 만남
1921년 11월 영랑 김윤식(19살)이 일본 동경에 있는 청산학원 생활을 익혀가던 어느 날 교문을 나오는데 일본 학원생들이 지껄여대는 소리를 들었다.
“그놈 조센징 말이야, 용철이란 놈이 수학과 수석이야!”
“조센징, 전라도 삐쩍 마른 새끼말이야!”
소리를 들은 김윤식은 “말 좀 물읍시다, 용철이란 학생이 혹시 조선 학생 아니오?“ “용철이 놈 말이요? 고향이 조선 전라도 광주 어디라던데........?
윤식은 급한 발걸음으로 박용철을 찾아 나서 교수실 앞에서 만났다.
“나는 전라도 강진 출신 김윤식이오.“
“아, 그러신가요, 박용철입니다.” “저는 전라도 광주 송정리요.” “박형, 축하하오, 수석 하셨다면서요.”
용철보다 1살 연상이면서도 호탕한 성격의 윤식은 용철과 친구가 될 것을 제안하고 낮 선 이역만리 동경에서 식민지 조선의 유학생 용철과 윤식의 우정은 이렇게 극적으로 시작되었다.

∎⌜시문학파⌟창립과 순수서정시 시대를 열다.
박용철은 시인으로 활약하면서 순수서정시 동인들과 ⌜시문학파⌟을 결성하여 이끌면서 1930년 경성부 옥천동에 출판사 ‘시문학사’를 차려 순수서정시 운동을 펼쳤다.
3월 5일 ⌜시문학⌟잡지를 창간했다.
동인 창작 시 24편과 번역 시 5편을 실었다. 용아는〈떠나가는 배〉〈이대로 가랴 만은〉〈싸늘한 이마〉〈비나리는 날〉〈밤 기차에 그대를 보내고〉와 2두 편의 독일 번역 시가 실렸다. 영랑은 공식적인 문단에 처음 싣게 되다보니 무려 13편이나 되었다. 정지용은 4편, 이하윤은 시 2편과 번역 시 2편, 정인보는 번역 시 1편을 실었다.
⌜시문학⌟2호에는 수주 변영로와․ 김현구가 참여하고 ⌜시문학⌟제3호에는 신석정과․ 허 보가 동참하였다. 1931년 10월 10일 제3호를 끝으로 종간되었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조선인만의 창작시를 다루었던「시문학」이란 잡지는 경향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루어낸 한국 문학사의 커다란 조류를 형성하였다. 당시에 풍미했던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문학에 반발하여 정치성이나 사상성을 배제한 순수서정시를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한 것이다.

∎⌜시문학⌟ 창간호 편집후기 >
⌜우리는 시를 살로 색이고 피로 쓰듯 쓰고야 만다.

우리의 시는 우리 살과 피의 매침이다. ....... 중략
가슴에 늣김이 잇을 때 절로 읇허 나오고 읇흐면 늣김이 이러나야만 한다.
한 말로 우리의 詩(시)는 외여지기를 구(求)한다.
이것이 오즉 하나 우리의 傲慢(오만)한 宣言(선언)이다.⌟

⌜..... 한민족이 언어가 발달의 어느 정도에 이르면 구어口語로서의 존재에 만족하지 안이하고 문학의 형태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문학의 성립은 그 민족의 언어를 완성식히려는 길이다.⌟

⌜시문학⌟은 우리 민족의 언어를 완성 시키는 문학의 목표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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