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예운동가 용아 박용철 ②
입력 : 2023. 06. 26(월)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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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저널] ⩽떠나가는 배⩾ 박 용 철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같이 물어린 눈에도 비최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뫼ㅅ부리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는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회살짓는다
앞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간다


∎박용철은 ⌜민족문예운동가⌟ 였다.
1930년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군국주의적 무단통치를 강화하면서 우리 민족의 문화를 말살하는 일제에 맞서 박용철은 우리말을 지키고 우리 문학을 완성 시키기 위해 민족문예 독립운동을 펼쳐 우리나라 문학과 극예술의 기반을 다지고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첫째, 시인으로서 ⌜시문학파⌟를 창립하여 순수서정시 시대를 열었다.
둘째, 번역가로서 우리 문학의 지평을 넓혔다.
셋째, 비평가로서 문학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넷째, 연극인로서 우리나라 극예술의 초석을 다졌다.
다섯째, 출판가로서 우리나라 발간문화의 선구자였다.

박용철의 35년의 짧은 생애의 마지막 8년에 이룬 금자탑은 그의 타고난 천재성으로 애국심의 발로에서 자금조달의 희생정신과 창조적 경영마인드로 이루어낸 것이다.

광산 소촌동에서 부농(오천석군) 박하준의 아들로서 태어났다.
6살 무렵에 아버지 박하준은 광주읍내에 살면서 호남은행(조흥은행) 두취(은행장)로 광주지역의 유지행세를 하였다.
12살(1915년) 3월 광주공립보통학교(서석초등)을 우등생으로 졸업했다.
13살(1916년) 경성 배제고등보통학교 학교 우등생으로 수학의 천재였다.
항일 성향의 학보 ‘목탁’을 발간하기도 했다.
18살(1921년) 일본 동경 청산학원 중학부 4학년에 편입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천재성을 발휘하였다. 특히 수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살(1923년) 4월 동경외국어학교 독어부에 진학하고 1학기가 끝나고 하계방학을 맞아 귀국하여 고향 송정리로 내려왔다.
9월 1일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 1학년 2학기에 편입하여 2학년 1학기까지 다녔다. 연희전문학원 시절 위당 정인보에게 시조를 배우고 정인보를 통해 수주 변영로를 만나고 염형우를 통해 성악가 윤심덕과 음악가 김영환을 만나 피아노를 배우기도 했다, 시, 시조, 희곡 등을 창작하고
1924년 5월에는 연희전문학교 교지 「연희」에 단막극 “해피나라”를 발표하고 다음 해에도 학교 공연 극본을 써주는 극작가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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