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예운동가 용아 박용철 ③
입력 : 2023. 07. 10(월)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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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저널] ∎번역을 통해 우리 문학의 지평을 넓혔다.

외국 시 342편과 소설 2편, 희곡 7편을 번역하였다.
외국 문학의 번역은 우리 민족의 언어를 완성하고 조선 문학의 발전을 위한 열정에서 나온 일이었다.


박용철은 일본 동경 청산학원 중학부 시절에 문학을 공부하는 영랑과 가까이 지내며 문학에 대한 관심을 두게 되는 데 5학년 독일 문학 수업에서 독일의 시인 ’괴테’와 ’하이네’의 낭만주의적 서정문학을 공부하면서 더욱 문학에 빠져들었다. 괴테는 낭만주의적 열정과 앞날의 희망을 품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를 썼다. 하이네도 봉건적인 독일의 억압체제에 저항하고 실연의 슬픔과 사랑의 정열을 아름답게 노래한 서정시인으로서 독일 문학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박용철은 괴테와 하이네에게서 자기 모습과 자신의 열망을 발견했으리라.
그로 인해 1923년 동경대학교 외국어 학과 독어부에 입학한 것으로 보인다.
1925년부터 1927년 봄까지 2년 동안 영어와 독일어, 일어, 영어, 외국 시집과 소설, 희곡 그리고 독일 철학, 역사 등 다양하게 공부했다.
영국의 낭만주의를 주도했던 워즈워스가 말하는 ’시‘란 ‘힘찬 감정의 자연 발생적 넘쳐흐름’이라고 했던 것을 용아는 ‘속의 덩어리가 나옴’으로 인식하였다. 그래서 낭만적인 시가 시인들의 단순한 기교일 수 없다는 것이다.

용철은 조선에 불어 닥친 개화사상과 자유주의 물결에 맞춰 인간의 자유와 해방에 대한 희망을 갈구하면서 우리 문학을 세계적 변화의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 외국 문학의 번역 활동을 하였다.

당시 조선 문단은 1919년 3.1만세운동을 기점으로 새롭게 사회주의 경향의 신경향파가 조직되어 있었다. 그것은 1922년 9월 우리나라 최초 프로문화 운동 단체이자 좌익운동단체 염군사焰群社가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1923년 10월 ‘인생을 위한 예술, 현실과 투쟁하는 예술’을 표방하며, 신경향파 문학을 추구하는 파스큘라(PASKULA)가 있었다.
파스큘라의 구성원 대부분은 배재고보와 동경 유학생 출신이었으며, 그중 박영희, 김기진, 김복진(현대조각가)은 박용철과 같은 배재고보 동기들이었다.
1925년 8월 23일 ‘염군사’와 ‘파스큘라’가 통합해 카프(KAPF 조선 프롤레타리아예술가 동맹)라는 전국적인 예술가 조직이 결성되어 좌익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민중주의적인 의식을 강하게 표현한 작품들이 발표되곤 하였다.

그대 흐름 속에서 박용철은 낭만주의적인 순수서정시 동인들과 ‘시문학 파’를 결성하여 순수서정시 잡지 ⌜시문학⌟지를 창간했던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서정문학 시대의 출발이었다.

∎우리나라 연극예술의 기반을 다졌다.
일제 총독부의 억압정책으로 우리의 연극 활동을 원천적으로 통제하여 연극이 사라져가는 위기를 맞고 있었다. 거기에 맞서 1931년 7월, 이하윤과 더불어 해외유학파 12명이 ‘극예술연구회’를 조직해 연극 활동을 전개하였다.

박용철은 임원으로 간사를 맡아 자금을 지원하고 희곡 4편을 창작하고 7편의 희곡을 번역하였다. 때로는 단역 배우까지 하면서 우리 연극을 살려갔다. 그리고 연극 잡지 ⌜극예술⌟을 창간하여 6호까지 발간을 이어가면서 우리 연극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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