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예운동가 용아 박용철 ⑤
입력 : 2023. 08. 07(월)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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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저널] ⟨이대로 가랴마는⟩ 박 용 철

설만들 이대로 가기야 하랴마는

이대로 간단들 못 간다 하랴마는

바람도 없이 고이 떨어지는 꽃 닢 같이
파란하늘에 사라져 버리는 구름 쪽같이

조그만 일로 지금 숫더리는 피가 멈추고
가는 숨길이 여기서 끝맺는다면
아- 얇은 빛 들어오는 영창아래서
참아 흐르지 못하는 눈물이 온 가슴에 젖어 나리네

∎우리나라 발간문화의 선구자였다.
일제강점기 용아는 「시문학사」라는 출판사를 차려 민족문예독립운동의 대중적 매체로 문예지 발간을 통해 우리 문학계의 새 지평을 열었다.
1930년 3월⌜시문학⌟서정시 시 잡지를 창간하여 3호까지 발간하였다.
1932년 12월⌜문예월간⌟잡지를 창간하여 4호까지 발간하였다.
1934년 1월⌜문학⌟잡지를 창간하여 3호까지 발행하였다.
1934년 4월⌜극예술⌟연극잡지를 창간하여 6호까지 발간하였다.
1935년 10월⌜정지용 시집⌟과 11월⌜영랑 시집⌟을 발간했다.
그의 이상理想은 오로지 ‘우리다운 문학과 조선 문학의 건설’이었다.

∎종합문예지 ⌜문예월간文藝月刊⌟발간
용아는 1930년 3월 ⌜시문학⌟ 발간에 이어 ⌜월간문예⌟를 발간하게 되는데
‘시’에 국한되지 않은 종합적인 문예 월간지를 구상하였다.
영랑의 문학관文學觀이 순수시 영역에 머물렀다면, 용아의 문학관文學觀은 우리 문학이 세계문학의 무대로 진출해야 한다는 포괄적인 문예운동의 지향 점을 가지고 있었고 ⌜문예월간⌟발간은 문예운동의 첫걸음이었다.
⌜문예월간⌟의 집필진으로 해외문학파(외국문학연구원)가 대거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외국문학연구회’의 이하윤, 김진섭, ‘극예술연구회’의 장기제, 함대훈, 이헌구, 홍일오, 정인섭, 유진오, 변광호, 고영환 등이 참여해 1931년 11월 1일, 「문예월간」 창간호가 발행되었다.
.용아는 「시문학」과 「문예월간」 발간에 자금난과 건강악화로 인해 「문예월간」은 제4호(1932. 3. 1)를 끝으로 종간되었다.
1934년 1월 문학잡지 「문학⌟을 창간하여 3호까지 발행하고, 1934년 4월 연극 잡지로 「극예술」을 창간하여 6호까지 발간하고, 마지막으로 「정지용 시집」과 「영랑 시집」울 발간했다.

∎정지용 시집과 영랑시집 발간
1935년 봄, 용아는 정지용, 영랑과 함께 「카프」의 수장이었던 임화의 병문안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용아는 지용에게 “시인은 모두 폐를 앓으니 지용도 그럴 생각 없느냐”고 하니 지용은 “아직 시집 한 권도 못 내놓았는데 가면 되겠느냐”고 대답하자, 용아는 그러면 당장 한 시기에 우리 셋의 시집을 발간하기로 하고 그 동안 모아둔 작품을 정리해 달라고 하여 용아는 심혈을 기울여 새로운 편집 기술을 발휘하여 우아하고 격조 있는 시집을 만들어냈다. 10월에〈정지용 시집〉을 발간하고 11월에〈영랑 시집〉을 발간하여 이듬해(1936년) 5월 12일에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시집이 난 뒤의 조선 시는 획기적으로 새 출발을 하였다고 단언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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