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수채화가 배동신 ⓛ
화골(畵骨)을 그렸던 천재 기인(奇人)
입력 : 2023. 11. 08(수)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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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저널] 2017년 10월 26일 미국 ‘이베이’ 온라인 경매에서 배동신의 수채화 한 점이 150만 달러(약 17억 원)에 판매되었다. 호당 가격으로는 우리나라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2014년 10월, ⌜누드수채화⌟가 36만 달러(약 4억 원) 판매되었고 2015년 7월, 정물화 ⌜복숭아⌟가 18만 달러(약 2억 원)에 판매되기도 했었다.

∎우리고장에 태어난 배동신 화백


1920년 6월 16일 송정역 앞에서 한약방을 하던 배연원의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2008년 12월 9일 여수에서 세상을 떠났다.
배동신은 광주 서석초등학교에 입학했다가 부친이 한약방을 벌교로 이사하는 바람에 여수 서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초등학교 시절 한약방에서 간판장이가 사슴그림을 그리는 것을 본 순간 그림에 대한 욕망이 튀어나와 버렸다. 운명적인 그림과의 만남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배동신에게 무엇이든 해 줄 수 있었지만 그림만은 반대했다.

16살(1936)에 배동신은 그림을 배우기 위해 가출하여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배동신은 자신의 그림에 번번이 실망하고 있을 때 우연히 박수근을 만난다. 그림에 대한 조언을 들으며 열심히 그렸다. 박수근의 소개로 평양에서 미술계의 천재로 알려진 문학수와 향토적 정서를 보여준 정이석 이란 걸출한 화가를 만나 교류하면서 그림이 한 단계 더 진화할 수 있었다. 배동신은 자신만의 화폭을 구축하기 위해 고민하면서 투명하고 담백한 수채화의 매력에 빠진 그는 수채화 기법과 이론 공부에 집중했다.

∎일본 유학을 간 배동신.

17살 때(1937) 문학수의 권유로 동경유학에 가게 된다, 여수항에서 밀항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너가 동경 ⌜가와바타(川端)미술학교⌟에 입학하였다. 무일푼으로 왔기에 당장에 생존과 생활이 시급해 신문배달, 당구장 잡일 등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일본인의 멸시 속에서도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조선의 젊은 천재 우에노에서 꽃피다.’ - 일본 언론 제목- 대서특필

일본에 들어 간지 6년 후 1943년 신인미술가의 등용문이었던 제7회 자유미술창작가협회전에 작품 ⌜초상⌟을 출품해 입선의 영애를 안고 일본화단에 화려하게 등극한다. ⌜자유미술가협회⌟는 1937년 2월에 창립된 순수미술운동이다. 당대 혁신적인 미술이라 할 수 있는 입체파, 추상 그리고 샤갈과 같은 그런 작품들이 많이 출품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배동신의 ⌜초상⌟이 입선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백성이었던 한국인에게 입선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유학생 축하 간담회에서 이중섭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아리랑을 불렀고 강용운, 양수아, 박고석, 신상옥 등 20여 명의 유학생들이 결집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로 진정한 동반자가 된 것이다.
광산저널 gsj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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