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수채 화가 배동신 ④
입력 : 2024. 01. 11(목)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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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저널] ∎아내 마사에의 고생
진도중학교 교사 시절 일본인 아내 마사에는 공사장에서 벽돌을 나르는 험한 일을 하면서도 일본 잡지 ‘문예춘추’를 주문해 주는 등 지극정성을 다했다. 학생들이 땔감도 해다 주고 학부모들이 간장이나 된장을 가져다주는 등 따스한 보살핌이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가난했다.

조규일(85) 화백(백민미술관)은 “배동신 선배는 진도중학교에서 1년 반 정도 근무하셨는데, 배동신 선생으로는 한 곳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곳입니다.” 가식 없는 태도와 뛰어난 미술 실력으로 학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지만, 그는 태생적으로 규격에 얽매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마사에 일본으로 떠나다.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광주로 올라와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한 배동신,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지만, 그저 그림에 몰두할 뿐이었고 친구들과 술을 찾았다. 술은 그에게 고단한 삶의 도피처가 되었고 예술적 기운을 불어 넣어주었다. 그로 인한 경제적 압박과 궁핍한 현실은 오롯이 아내 마사에의 몫이었다.

마사에는 과일 행상과 날품팔이를 하면서 근근이 살아가면서 뒷바라지를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마사에는 도저히 배동신을 믿고 살다가는 점점 커가는 자식들의 교육이 걱정이었다. 그런 남편에 지쳐 일본행을 결심하게 된다. 아이들의 옷을 챙기다가 수채화 7점을 챙겨 들고 비행기(배)에 몸을 실었다. 두 아들과 어린 딸을 등에 업은 모습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일본 하네다 공항 세관원이 마사에의 짐 속에 들어있는 배동신 그림을 보고 미술품을 훔쳐서 위장 반입하려는 것으로 판단해 조사하고 있었다. 한국미술협회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세관원은 ‘국보급 그림’으로 판단한 것이다. 기자들의 취재 경쟁으로 일본 전역에 알려지면서 여러 화상들이 그림을 사려고 찾아왔으나 마사에는 거절했다. 마사에는 훗날 삽화를 배워 근근이 살았다고 전한다. 마사에를 떠나보낸 배동신은 좌절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마사에 대한 연민과 어린 딸, 두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그를 더욱 절망과 나락으로 내몰았다. 그럴 때마다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 일본으로 전화를 걸었다. “마짱, 마짱” 부르는 소리는 처절했지만 들여오는 소리는 너무 차가웠다.

술을 마시며 가곡을 불러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일본 유학 시절 마사에의 누드를 나무판에 그린 유화작품과 그녀의 모습을 새긴 판화 1점을 꺼내 보며 그리움을 달랬다. 그리움과 굶주림, 외로움으로 날마다 술에 빠져 급성간염으로 쓰러져 광주 적십자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제자 피아니스트 김영규와의 만남
배동신이 입원한 적십자병원에 달려온 살레시오 여고 음악 교사 김영규, 전남여고 시절의 미술부 제자였던 김영규는 조선대 음악과 박기석 교수로부터 입원 소식을 듣고 달려와 지극정성으로 간호해주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배동신은 아름답고 가식이 없는 해맑은 소년의 모습이다. 낡은 청바지에 유리창을 넘어 다니고, 문교부 장학관이 올 때도 교탁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가르치던 선생님, 김영규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예술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열심히 피아노를 공부하여 서울대 음대에 진학해 살레시오 여고 교사로 돌아왔던 것이다.

∎ 예술가의 길 .... 그 길을 함께 가다.
전라도 최초로 피아노 전공자 김영규는 자신의 일생을 배동신에게 던지기로 했다. 그녀는 위대한 천재가 쓰러질 것 같은 생각으로 1958년 결혼을 하게 된다. 배동신의 나이 38세였다. 신혼살림은 광주여고 옆 2층집에 차리고 1층은 피아노 교습소로, 2층은 살림방과 화실로 두었다. 파아노 교습소는 광주에서 가장 많은 수강생들이 몰렸다. 배동신 화실에는 이근표와 여학생 한두 명이 그림을 배우러 다녔다. 예술가의 기백과 순수성을 믿으며 받아준 김영규의 속 깊은 내조가 있었기에 배동신은 자신의 예술세계를 더욱 넓힐 수 있었다.

어느 날 배동신은 1939년 일본에 있을 때 그렸던 마사에 누드 유화 1점(33*20cm)을 친구 서태관에게 주어버렸다. 새로 결혼한 마당에 다른 여자의 누드 그림을 간직할 수 없었던 것, 이 그림은 훗날 30년 제자였던 서양화가 이근표(66)에게 전해졌으며 배동신이 타계하기 전인 2000년대 초 부인이 보는 앞에서 그림에 사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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