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수채 화가 배동신 ⑥
입력 : 2024. 03. 07(목)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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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저널] ∎무등산 화가 배동신

이 무렵 가장 많이 그린 풍경이 무등산과 목포항, 나주 금성산인데 무등산을 즐겨 그렸다. 무등산을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했으며 황갈색으로 그린 그의 무등산은 완벽한 조형감을 보여주었다. 무등산은 그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었고 그의 예술을 키운 정신적인 자양분이 되었다. 세잔느가 빅토리산을 흠모했듯이 배동신은 무등산을 사랑했다. 무등산을 그릴 때는 산에서 그리지 않고 무등산을 가장 완벽하게 조망할 수 있는 월산동 한복판(현재 MBC) 언덕이 그의 작업실이었다. 목포 삼학도는 화장실 옆에서 그렸고, 정물은 사과, 복숭아뿐인데 허름한 쟁반에 5개나 6개 올려놓고 그렸다, 사과가 썩을 때까지 그리지 못하고 바라만 본 적도 있다. 수채화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해 수백 장의 스케치와 초상을 그렸다. 그의 놀라운 드로잉 솜씨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일으키게 했지만 정작 자신은 그조차도 느끼지 못했다. 끝없이 습작과 몰두의 시간 속에 펼쳐지는 무아의 향연, 탁월한 천재성에 최고의 몰입이 더해져 천상의 풍경이 한 폭의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평생 수채화만을 고집해온 배동신이 있었기에 그저 유화의 밑그림에 불과했던 수채화가 하나의 화풍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배동신의 누드는 여인의 육체가 아닌 거대한 산”

1945 – 1977년까지는 중기에 해당하는 시기다. 파리 풍과 일본풍을 넘나들며 자유분방하면서도 한국수채화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인물과 풍경, 정물 등을 두루 그렸으며 뛰어난 소묘력을 과시했다. 인체의 뼈와 볼륨은 소묘력에서 나오는데 빠른 운필과 순발력, 경쾌함과 장중함이 어우러진 콘트라스트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특히 자화상은 대담하고 거침없는 선과 굳게 다문 입언저리 묘사가 독특하다. 흑백톤을 대비시킨 검은 뿔태 안경 속의 시선은 일본 화단을 감동으로 흔들었으며 누드작품은 세계 화단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볼륨감을 드러냈다. 그의 누드는 여인의 육체가 아닌 거대한 산이며 자유분방한 디포르메가 두드러졌다.

1978년 구상전 회원인 최영림, 박고석 등이 상경을 권유해 광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갔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1989년 여수로 내려와 그야말로 초탈의 경지에서 예술혼을 일구었다. 그는 주로 피안의 항구, 산 등을 그렸는데 주제는 어김없이 그리움이었다. 마사에를 잊지 못해 오동도의 밤바다에서 술을 마시며 전화를 걸곤 했다.

여수 풍경과 나부를 많이 그렸다. 옆으로 길게 누운 여인의 누드를 그린 것으로 대담한 구도로 두상과 다리를 자르고 부분을 강조한 다이나믹한 작품이다. 이는 회화의 조형적 가치와 창작의 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한 독창적 세계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裸婦는 마치 무등산처럼 펑퍼짐하고 이상한 비례를 보이고있다. 꺾이고 접힌 흔적과 긁어내고 문지른 표면 효과가 곧 인체를 마치 산을 볼 때처럼 같은 조형성은 배동신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회화적 본질을 느끼게 해준다. 그는 물질적 소유를 초월한 총체적 인격의 소유자로 추앙을 받았으며 그의 작업은 ‘순수한 예술에 대한 헌신’으로 받아들여졌다.

∎불멸의 화가 배동신

그의 대표작은 「항구의 배」와 「자화상」 「조선장」 「목포항구」 「무등산」 「여인-인물」 시리즈 등이 있는데 주요작품은 일본 동경 「우에노미술관」과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가 보여준 그림의 미학은 순간의 감응으로 빚어낸 조형적 상상력, 여기에 수채화 특유의 물맛을 살려냄으로써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천재적 기질과 강한 자의식 등이 혼재된 천재 화가였다.


배동신의 작품세계는 독창적 수채화 세계 확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지도. 작품을 판매하기 위한 마켓팅도 없이 오직 그림에만 몰입되어 평생을 살아온 배동신, 죽을 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그의 삶이 곧 그림이었고 가식 없이 아름다운 자연이 곧 그의 삶이었다.

2008년 12월 9일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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